2008년 05월 27일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
TV 프로그램들 중 불우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류가 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가난한 아이의 가족이나, 가족 내에 장애우를 여럿 둔 사람이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런 프로그램의 방송사로서의 최장점은 선정적인 내용으로 대충 때워도 좋은 의도처럼 보여서 비난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감정적인 부분은 잠깐 제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책을 보면 11000원이다. 요즘 책값이 올라서 자그마한 책인데도 꽤나 비싸다. 책을 펴면 읽기 편하게 여백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사진이 있는 장은 사진을 음미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 아래에 글씨를 써 넣지 않는다. 이 책의 수익금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여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여기에서 조금 더 지면을 아껴써서 그들에게 혜택을 더 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전달되는 액수보다 이 책을 사서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며, 동정을 하며 세계적인 측면에서의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식으로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이 만원 기부하는 것은 책이 몇 권 더 팔리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 그렇지?
책에 나온 11가지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봤는데. 정말 나는 세상에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인도/네팔에는 신분제가 있고, 티벳과 중국의 갈등은 끝까지 갈 조짐이고, 아직도 명예살인이 정당화 되는 나라가 있고,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총칼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중고등학교 이상이라면 당연히 모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도 상황을 불문하고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니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생각하게 해 줘서 고마워.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적선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추하다. 그러니 외면해도 큰 가책을 받지 않는다. 옛날마냥 어린 아이들이 구걸한다면 적선하는 비율은 더 높을지 모른다. 그런 일을 보기 힘든 것은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보호는 이 나라에서 상식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 현대의 우리에게는 불행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정서에 더 큰 파문을 줄 것이다. 어쨌건 간에 (이 글을 쓴 대부분 조선일보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런 다큐 형식의 글은 잘못하면 싸구려 구걸글의 대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가장 확실하게 그런 시각을 막아주는 법은 글쓴이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이라면 힘들겠지만 기자적인 시각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자 분들은 기자보다 사람이 되려고 하신 듯 하다.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쉽다.
괜찮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어떤가. 외국의 불행한 아이들만 도우면 되지.
책을 보면 11000원이다. 요즘 책값이 올라서 자그마한 책인데도 꽤나 비싸다. 책을 펴면 읽기 편하게 여백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사진이 있는 장은 사진을 음미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 아래에 글씨를 써 넣지 않는다. 이 책의 수익금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여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여기에서 조금 더 지면을 아껴써서 그들에게 혜택을 더 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전달되는 액수보다 이 책을 사서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며, 동정을 하며 세계적인 측면에서의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식으로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이 만원 기부하는 것은 책이 몇 권 더 팔리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 그렇지?
책에 나온 11가지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봤는데. 정말 나는 세상에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인도/네팔에는 신분제가 있고, 티벳과 중국의 갈등은 끝까지 갈 조짐이고, 아직도 명예살인이 정당화 되는 나라가 있고,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총칼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중고등학교 이상이라면 당연히 모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도 상황을 불문하고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니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생각하게 해 줘서 고마워.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적선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추하다. 그러니 외면해도 큰 가책을 받지 않는다. 옛날마냥 어린 아이들이 구걸한다면 적선하는 비율은 더 높을지 모른다. 그런 일을 보기 힘든 것은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보호는 이 나라에서 상식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 현대의 우리에게는 불행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정서에 더 큰 파문을 줄 것이다. 어쨌건 간에 (이 글을 쓴 대부분 조선일보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런 다큐 형식의 글은 잘못하면 싸구려 구걸글의 대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가장 확실하게 그런 시각을 막아주는 법은 글쓴이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이라면 힘들겠지만 기자적인 시각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자 분들은 기자보다 사람이 되려고 하신 듯 하다.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쉽다.
괜찮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어떤가. 외국의 불행한 아이들만 도우면 되지.
# by | 2008/05/27 21:36 | 책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