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들 중 불우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류가 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가난한 아이의 가족이나, 가족 내에 장애우를 여럿 둔 사람이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런 프로그램의 방송사로서의 최장점은 선정적인 내용으로 대충 때워도 좋은 의도처럼 보여서 비난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감정적인 부분은 잠깐 제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책을 보면 11000원이다. 요즘 책값이 올라서 자그마한 책인데도 꽤나 비싸다. 책을 펴면 읽기 편하게 여백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사진이 있는 장은 사진을 음미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 아래에 글씨를 써 넣지 않는다. 이 책의 수익금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여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여기에서 조금 더 지면을 아껴써서 그들에게 혜택을 더 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전달되는 액수보다 이 책을 사서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며, 동정을 하며 세계적인 측면에서의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식으로 마음을 갖게 된 사람이 만원 기부하는 것은 책이 몇 권 더 팔리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 그렇지?
책에 나온 11가지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봤는데. 정말 나는 세상에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인도/네팔에는 신분제가 있고, 티벳과 중국의 갈등은 끝까지 갈 조짐이고, 아직도 명예살인이 정당화 되는 나라가 있고,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총칼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중고등학교 이상이라면 당연히 모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도 상황을 불문하고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니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생각하게 해 줘서 고마워.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적선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추하다. 그러니 외면해도 큰 가책을 받지 않는다. 옛날마냥 어린 아이들이 구걸한다면 적선하는 비율은 더 높을지 모른다. 그런 일을 보기 힘든 것은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보호는 이 나라에서 상식화되었기 때문이
(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 현대의 우리에게는 불행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정서에 더 큰 파문을 줄 것이다. 어쨌건 간에
(이 글을 쓴 대부분 조선일보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런 다큐 형식의 글은 잘못하면 싸구려 구걸글의 대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가장 확실하게 그런 시각을 막아주는 법은 글쓴이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이라면 힘들겠지만 기자적인 시각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자 분들은 기자보다 사람이 되려고 하신 듯 하다.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쉽다.
괜찮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어떤가. 외국의 불행한 아이들만 도우면 되지.